한국예탁결제원 웹진
Vol.264 AUTUMN 2022

영화로 만나는

긍정과 치유의 철학

영화로 받는 혜택은 여러 가지다. 예술의 향유가 있고, 대중문화의 유희가 있고, 교양의 탐구도 있다. 영화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 매체를 품고 있어서 종합예술로 불린다. 그래서 영화로 받는 감정적인 이익은 무궁무진하다. 우울한 뉴스가 넘쳐나는 요즘에는 영화로 밝은 분위기와 긍정 메시지를 받아 치유에 이를 수 있다. 다음에 소개할 세 편의 영화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기운을 선사한다.

글과 사진허남웅 영화평론가

시골의 논과 밭에서 되찾은 삶의 지혜,
리틀 포레스트

첫 번째 영화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를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2018)이다.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가 공무원 시험에 치이고 등록금과 하숙비 마련에 시달리다 각종 경쟁에 심신이 피폐해 퇴각하는 군인의 심정으로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전열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영영 낙오자가 되어 도시에서의 삶은 꿈도 못 꿀 것만 같다. 그렇게 낙담하며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웬걸! 일궈나갈 터전으로 눈에 들어온다. 비옥한 땅에 시금치를 심고 무청을 잘 말리면 일용할 양식으로 충분하고 고구마도 잘 가꾸면 출출할 때 든든한 간식거리로 제격일 듯하다. 집의 대문 앞으로 늘어선 나무와 풀을 잘 가꿔 그럴싸한 산책로로 조성하고 싶어진다. 그때 마침 혜원의 귀향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구 은숙(진기주)과 재하(류준열)가 든든한 우군으로 합류하면서 혜원에게는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혜원은 일각을 다투는 도시에서의 경쟁만이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인생의 척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초록으로 청량하게 펼쳐진 자연에서의 삶은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4월에는 중간고사, 6월에는 기말고사, 4학년에는 취업 공부 등 목표라는 시계를 맞춰 사는 삶에서 벗어나니 대청마루에 부는 시원한 바람처럼 쾌청할 수가 없다. 다 먹고 살자고 그러는 것. 손에 쥐는 돈이 얼마 없어도 먹을 거리와 쉴 거리가 집 안팎으로 넘쳐나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풍요롭기만 하다.
처음에 시골집에 온 것은 더는 도시에 감당할 만한 자리가 없을 듯해서였다.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넘고 보니 자연이야말로 혜원이 찾던 바로 그곳이다. 토마토는 태풍에도 끝까지 가지에서 안 떨어지고 버틴다고 하는데 이제야 삶이 주는 교훈을 알 것 같다. 직접 먹을 걸 키우고 해 먹는 일상이다 보니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게 자각된다. 사회가 정해준 삶의 목표를 가까스로 따라가느라 잊었던 나를, 웃음을, 여유를 혜원은 시골의 논과 밭에서 되찾았다.

우물 안 개구리의 일상탈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의 월터(벤 스틸러)는 사진 편집기자다. 그 유명한 화보 잡지 ‘라이프’에서 16년을 근무했다. 무려 16년! 매달 잡지 커버를 장식할 사진을 고르는 업무를 반복, 또 반복하면서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어도 의욕도 줄고, 흥미도 떨어지고, 그래서 무력해졌다. 목표 없는 삶은 바람 빠진 풍선과 같아서 하늘 높이 날아가려는 의지가 없다.
발등에 불 떨어질 일 없던 월터에게 발바닥 땀 날 일이 생긴다. 라이프의 폐간이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해서? 아니다. 마지막호 커버 사진을 인화해야 하는데 필름이 분실됐다. 해결책은? 사진을 찍은 기자를 찾아가 필름을 요청하면 된다. 그러나 세계 구석구석을 도는 사진기자를 어떻게 찾지? 그때부터 월터는 집에서 회사로, 회사에서 집으로의 동선을 처음으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목적지를 향해 움직여야 하고 낯선 주변을 살펴야 하고 생전 만나본 적 없는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일상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에너지가 바탕이 되어 활력이 생기고 이를 용기 삼아 전에 해본 적 없는 모험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월터는 늘 상상으로만 꿈꾸던 아이슬란드에서 대자연의 풍광을 배경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셰르파의 안내를 받아 그림처럼 하얀 눈이 덮인 산 정상을 오르기도 한다. 그 곳에서 월터는 이제나저제나 희귀한 눈표범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진기자와 만난다. 하지만 찍으라는 눈표범은 안 찍고 바라보는 사진기자가 의아하다. 사진은 삶의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지만, 좁은 렌즈로 바라보는 시선이기에 세상을 전부 담아내지는 못한다. 월터는 지금껏 렌즈 안 개구리의 삶을 살았다. 잡지 폐간을 앞둔 그는 더는 두렵지 않다. 제2의 삶에 맞설 모험심이 자신을 어느 목적지에 데려줄지 이젠 기대가 된다.

새로운 여행에서 꿈을 만나다,

모험은 혼자 할 때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할 때 공유하는 기쁨이 더 크다. <업>(2009)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Pixar)의 작품이다.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인사이드 아웃>등 픽사의 세계에는 시련은 있을지언정 잿빛 우울함은 없다. 대신 무지갯빛으로 넘쳐나는 희망이 여러 개의 풍선으로 넘실댄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업>의 할아버지 칼과 소년 러셀은 수만 개의 풍선을 프로펠러 삼아 하늘을 나는 집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미국의 집이 하늘을 날아 남미의 어딘가로 날아가는 기분은 짜릿하다. 가는 도중 비바람이 불어, 태풍이 몰아쳐 풍선이 하나둘 터지면서 어느 순간, 이 집이 짐처럼 느껴진다.
칼과 러셀에게는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과거가 있다. 칼은 평생을 함께했던 아내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면서 삶의 의미가 없어졌다. 러셀은 씩씩한 보이스카우트 소년이지만, 이를 지켜봐 줄 부모가 부재해 마음 한편이 외롭다. ‘이제 당신의 새로운 여행을 떠나세요.’ 혼자 남게 될 남편 칼이 과거만 그리워하며 여생을 보내지 않을까 걱정된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편지다. 꿈이 없는 현재는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로 나아가는 걸 막는다. 중요한 건 여행이지 목적지가 아니듯 꿈을 꾸는 그 자체로 사람은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모가 옆에 없는 8살 러셀에게는 78세 칼이 부모 대신이다. 칼에게 러셀은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삶의 파트너다. 칼은 자신에게 없는 젊음의 기운을 러셀에게서 충전할 수 있고 러셀은 경험 많은 칼을 나침반 삼아 시행착오를 줄인 삶을 즐길 수 있을 터다. 성장은 청춘과 젊음의 전유물이 아니다. 칼과 같은 할아버지도, 삶의 동반자를 잃은 이도 정신의 키가 자랄 수 있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아름다운 건 서로가 서로에게 내민 손이 밝은 미래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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