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탁결제원 웹진
Vol.264 AUTUMN 2022

삶은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돼

B급들의 긍정과 치유 콘텐츠

20%의 사람들이 80%의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세상에 사는 절대다수인 80%들. 그들이 느끼는 비주류의 감성이 B급 감성이라는 사회문화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1860년대 독일에서는 상류층들이 향유하는 고급 예술의 범주에 들지 못한 그림이나 음악을 ‘하찮은 예술품’으로 비꼬는 ‘키치(Kitsch)’로 분류했다. B급 감성은 키치가 가진 속성을 바탕으로 오늘을 위로하여 현실을 긍정하게 하는 우리 80%들의 콘텐츠이다.

편집부일러스트Arang

B급 감성 전성시대
B급 감성 콘텐츠를 극대화시킨 것은 글로벌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유튜브다. 빠른 콘텐츠 확산과 즉각적 피드백이 동시에 이뤄지는 유튜브의 특성을 충분히 활용한 영상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B급 감성 콘텐츠들의 인지도가 빠르게 상승했다. 대표적으로 애니메이터 유튜버 ‘장삐쭈(본명 : 장진수)’의 ‘병맛더빙’ 시리즈가 있었다. 병맛더빙은 70~80년대 인기 애니메이션의 특정 장면들을 편집해 웃긴 상황을 설정하고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장삐쭈 본인이 혼자 더빙한 영상이다. 익살 넘치는 특유의 말재간과 중·고등학생들이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문체인 ‘급식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말장난으로 주목을 받은 유튜버 장삐쭈는 구독자 200만 명을 보유한 인기 유튜버가 됐다. 이후 전문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팀을 꾸린 장삐쭈의 콘텐츠는 TV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광고, 마케팅 콘텐츠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을 활용한 B급 마케팅도 한동안 유행처럼 퍼졌다. 유명 아이돌이나 잘생긴 젊은 배우가 아닌 육십을 훌쩍 넘긴 배우 김영철 씨가 야인시대의 옷차림 그대로 버거킹 광고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가 외쳤던 ‘사딸라’라는 대사는 한동안 유행어가 되어 조회수 550만을 넘기는 기록을 세웠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B급 감성의 선두주자는 유튜브 채널 ‘워크맨(Workman)’의 장성규 아나운서이다. 워크맨은 JTBC 아나운서 출신 장성규 씨가 수많은 직업을 하루 동안 직접 일해 보면서 겪는 일들을 담아낸 영상이다. 개그맨을 능가하는 장성규의 입담은 물론 독특한 자막배치는 방송가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보통 자막 텍스트가 영상 하단에 고정되는 고전적 예능 프로그램의 문법에서 벗어나 필요에 따라 자막으로 등장인물의 얼굴을 가려버리거나 얼굴로 글자를 만드는가 하면, 영상 속 피사체의 움직임을 따라 텍스트가 움직이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법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공중파나 케이블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따라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
B급 감성은 유통채널에서도 시도되었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야심차게 선보인 만물상 잡화점 ‘삐에로쑈핑’을 기억할 것이다. 마케팅부터 점포의 구성까지 대놓고 B급을 추구하는 삐에로쑈핑은 일본 돈키호테에서 가져온 만물상 콘셉트에 드립으로 채운 점포내 디자인과 구성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삐에로쑈핑의 B급 감성은 재미를 쫓는 젊은 소비자들에게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지만 시장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얼마 전 철수하였다.
B급 감성은 디자인에서도 왕성하게 활약 중이다. 완성도 높은 폰트 대신 어딘가 어설픈 폰트의 사용, 시대가 지난 것 같은 그래픽적 요소들이 등장하면서 우리 삶이 꼭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어설프고 서툰 느낌이 이제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는 이들 B급 감성은 닿을 수 없는 20%들의 삶을 체념한 평범한 80%들이 삶을 긍정하는 방식이자 스스로 찾은 치유의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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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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