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노을이 서서히 지고 있다. 저녁 바람을 탄 요트는 광안대교 아래를 유유히 흘러가는데 선미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두 친구는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다.
작년에 큰 수술을 받았던 윤지혜 차장은 그 이후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중으로 미루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또 기회가 있겠지 하며 미룬 일들은 기회가 다시 와도 잡기가 어렵다는 걸 충분히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2년 전에 륜경이와 요트를 타기로 했는데 서로 일정이 안 맞아 그만두기를 여러 번 했어요. 크게 아프고 나니 이런 저런 핑계로 미뤘던, 꼭 그때에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자꾸 생각나더라구요. 아주 오래 전부터 같이 여행가자 했던 일도 얘기만 하고 말았는데, 이젠 놓치지 않고 같이 떠나려고 합니다. 지금 누려야 할 행복을 미루는 실수는 더 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날이 어두워질수록 화려해지는 광안리를 뒤로 하고 회항하는 요트에서의 시간은 아쉽기만 하다. TF팀에 합류하면서 같이 점심을 하거나 커피를 마실 시간도 없었다는 김륜경 차장은 오늘 하루만큼은 온전히 친구와 자신을 위해 쓰고 싶다고 한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짊어져야 하는 공적인 책임의 무게와 아이들이 자라면서 커지는 부모라는 존재의 무게감이 ‘나’라는 개인의 자유성을 빼앗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은 어렵게 내려놓은 두 가지 책임의 무게를 잊고 온전히 서로의 이야기만 하고 싶단다. 그러기에 여름의 열기가 조금은 주눅든 저녁 공기는 충분히 완벽했고, 바다를 막 건너온 두 사람은 정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