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탁결제원 웹진
Vol.264 AUTUMN 2022

김륜경·윤지혜 차장

웃음기 사라지는
삶의 고비에
푸른 숨구멍 같은 친구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만 하면 모든 게 다 풀릴 줄 알았던 이십대는 우리 생애주기 중 가장 쉬운 단계일지도 모른다. 연차가 쌓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삶의 고개를 넘을 때마다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지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힘들게 고개를 오르는데 마침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있다. 그러자 숨가쁘게 오르느라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을 한줄기 바람이 씻어주는 것 같은 시원한 기분이 든다. 곁에 그런 사람을 두었다면 점점 웃음기 사라지는 삶의 고비고비도 쉬이 넘어볼 용기가 나지 않을까.

편집부사진이복환

젊은 그날의 푸른 숨구멍 같은 사람

2년 전 함께 요트를 타자던 두 친구의 약속은 각자 삶을 건너오느라 오늘에서야 이루어졌다. 마침 날씨도 요트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낮의 하늘은 맑고 드높았으며, 바람은 적당해 여름의 바다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입사 동기 스무 명 중 여직원은 우리를 포함해 3명뿐이었어요. 한 명은 지금 일산에 있고 저희 둘은 발령을 받으면서 각자 부산과 서울을 내려가고 올라가는 시점은 달랐지만 거의 같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18년차 차장이지만 사적으로는 18년을 함께한 친구인 셈이죠.”
입사 초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냈다던 김륜경·윤지혜 차장. 회사에서도 내내 함께했던 둘은 퇴근 후에는 함께 운동을 했고 각자의 팀 회식에 참석할 만큼 깊은 우정을 쌓아갔다. 어쩌다 회식자리가 늦어지면 윤지혜 차장의 자취방에서 같이 잠을 자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밤을 보내기도 했지만 윤 차장이 먼저 결혼을 하면서 각자 다른 궤도의 삶에 접어들었다.
“스물 일곱에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육아와 회사일을 병행하느라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 손을 빌어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던 터라 여유라는 게 없었죠. 한창 부산에서 독박육아 중이었던 2018년에 륜경이가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정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륜경이와 자질구레한 집안일부터 시시콜콜한 온갖 이야기를 나누자니 15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좋았죠. 정말 힘들었던 시기에 제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 친구예요.”

육아와 회사일을 병행하느라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어요.

그때 륜경이가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정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정말 힘들었던 시기에 제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 친구예요.

다른 듯 같은 두 마음

오늘 두 사람은 같은 듯 다른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옷을 맞춘 거냐 묻자 김륜경 차장이 선물한 옷이라고 한다.
“결혼 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땐 동대문에 가서 옷을 사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은 여러 이유로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요. 지혜는 평소 차분한 옷을 주로 입는 편이라 뭔가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옷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새로 산 지혜의 귀걸이가 초록색이어서 옷도 같은 컬러로 맞춰 골라봤어요.”
윤지혜 차장보다 늦게 결혼을 했지만 셋째 아이까지 낳은 김 차장 역시 육아로 힘들었던 건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이모님이 계셔도 엄마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세 아이들 때문에 삶의 반경은 좁아졌고 한때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달고 살 만큼 흔들렸다.
“지혜와 저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저는 좀 느긋하고 수용적인 성격인데 지혜는 엄격한 선비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죠. 그런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둘 다 충고나 조언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고치려 하기 때문이에요. 많은 대화를 하다 보니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교감하면서 위로가 많이 되어 전혀 다른 성격임에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누려야 할 행복을 미루지 않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노을이 서서히 지고 있다. 저녁 바람을 탄 요트는 광안대교 아래를 유유히 흘러가는데 선미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두 친구는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다.
작년에 큰 수술을 받았던 윤지혜 차장은 그 이후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중으로 미루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또 기회가 있겠지 하며 미룬 일들은 기회가 다시 와도 잡기가 어렵다는 걸 충분히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2년 전에 륜경이와 요트를 타기로 했는데 서로 일정이 안 맞아 그만두기를 여러 번 했어요. 크게 아프고 나니 이런 저런 핑계로 미뤘던, 꼭 그때에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자꾸 생각나더라구요. 아주 오래 전부터 같이 여행가자 했던 일도 얘기만 하고 말았는데, 이젠 놓치지 않고 같이 떠나려고 합니다. 지금 누려야 할 행복을 미루는 실수는 더 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날이 어두워질수록 화려해지는 광안리를 뒤로 하고 회항하는 요트에서의 시간은 아쉽기만 하다. TF팀에 합류하면서 같이 점심을 하거나 커피를 마실 시간도 없었다는 김륜경 차장은 오늘 하루만큼은 온전히 친구와 자신을 위해 쓰고 싶다고 한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짊어져야 하는 공적인 책임의 무게와 아이들이 자라면서 커지는 부모라는 존재의 무게감이 ‘나’라는 개인의 자유성을 빼앗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은 어렵게 내려놓은 두 가지 책임의 무게를 잊고 온전히 서로의 이야기만 하고 싶단다. 그러기에 여름의 열기가 조금은 주눅든 저녁 공기는 충분히 완벽했고, 바다를 막 건너온 두 사람은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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