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부산교통공사 자리에는 합판 수출로 유명했던 동명목재가 자리했고, 맞은편 부전우체국 자리에는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이 들어섰다. LG 브랜드의 뿌리인 럭키공업사는 연지동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고, 대우자동차의 전신 격인 신진자동차는 전포동에서 시작됐다. 이렇듯 동천의 근현대 역사는 국내 굴지 기업들의 태동과 함께 시작됐고, 이들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한다. 동천의 역사를 논할 때 이곳에서 기틀을 다진 기업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업의 성장과 발전 속에서 동천도 함께 변모하고 변화했다.
그 중에서도 한때 부산의 중심 상권이었던 조방앞 거리는 부산 사람들은 대강 어디쯤을 말하는지 알 정도로 부산에서는 고유명사화 된 곳이다. 이곳은 1917년에 설립되어 1968년 문을 닫은 조선방직 공장이 있던 자리로 ‘조방’은 조선방직의 줄임말이다. 동천이 부산 근대화의 역사를 품고 기억하고 아파하는 하천이라면, 조방은 동천을 젖줄로 태어났다 사라지면서 부산시민들의 고단했던 삶을 압축한 이름이다.
동명목재
신진공업사
1925년 좌천동에서 제재소로 시작한 동명목재는 광복 직전 동천 변에 있는 범천동에 합판 제조 및 제재공장을 세웠다. 이후 확장 이전해 1949년 상호를 동명목재상사로 바꿨다. 단일품목으로 국내 최대 수출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며 한때는 세계 최대의 합판공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해방 직후에도 사업은 번창했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수요가 폭발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이를 바탕으로 범천동에 이어 용당동과 학장동, 대저동 등 부산 곳곳에 계열사를 세우며 사세를 확장했다. 1963년에는 남구 용당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로도 10년간 놀라운 실적을 거뒀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무리한 사업 확장, 신군부와의 마찰로 1980년 결국 해체됐다.
1953년 여름에는 동천 변에 엄청난 규모의 공장이 들어섰다. 바로 제일제당이다. 마산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다 대구에 삼성상회를 세운 이병철 회장은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만든 첫 제조업체가 제일제당이다. 이곳에서 국내 첫 정제 설탕이 생산됐다. 당시만 해도 설탕은 100% 수입에 의존하던 사치품이었고, 제당 부문은 최첨단 산업에 속했다. 설탕이 대중화되면서 명절이나 병문안 선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제일제당은 이듬해 공장을 증설했고, 1957년에 제분공장을 세우는 등 몸집을 키워나갔다. 생산능력이 확대되면서 하루 50톤의 설탕을 만들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소비량의 30%를 넘는 수준이었다. 1962년에는 최초로 설탕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럭키공업사
경남모직
LG 브랜드의 모태가 된 럭키는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됐다. 1955년 대신동에서 연지동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국내 최초로 국산 치약을 대량 생산했다. 1970년대까지 시장점유율이 무려 98%에 달했고, 럭키치약이라는 상표가 보통명사로 쓰일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그밖에 대상그룹의 바탕인 미원식품, 한일그룹을 탄생시킨 경남모직, 태광그룹의 기원인 태광산업, 대동벽지, 부산방직공업, 태화백화점 등 수많은 기업이 이 일대에서 활발한 산업 활동을 펼쳤다.
태화백화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