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58 SPRING 2021

#예술가의 투자

돈의 속성과 흐름을
철저히 익힌 아트 비즈니스맨
제프 쿤스

 

2019년 5월 15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제프 쿤스(Jeff Koons)의 조형 작품 토끼(Rabbit)가
생존하는 작가의 작품으로는 최고 가격인 9천 100만 5천 달러(한화 약 1천 100억 원)에 팔렸다.
예술계의 통념에 도전한 현대미술의 걸작이라는 호평과 함께 브랜딩과 마케팅에 능한
장사치의 놀음에 놀아나고 있다는 혹평이 엇갈리는 순간이었지만,
예술가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열정에 비례하는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제프 쿤스이다.
오인숙(칼럼니스트)

일찍이 돈의 흐름과
논리를 익히다

시카고예술학교와 메릴랜드예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쿤스는 미국의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예술작품을 창조했다. 엄격한 평론가들은 대중문화와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담은 그의 작품들이 예술과 일상의 사이를 어지럽힌다고 혹평하기 일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21세기 미술계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친 건 사실이다.
이미 여덟 살부터 인테리어업자였던 아버지의 상점에서 명화 복제품을 다시 복제하여 자신의 사인을 넣어 판매하는가 하면, 아홉 살부터는 장난감과 캔디를 팔기 위해 집집마다 돌아다녔던 그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표를 파는 직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후원자를 모집하는 일을 맡아 성공적으로 해낸다. 그는 이 시기에 미술시장 고객들의 관심과 흥미를 파악하게 되었고, 1980년에는 뮤추얼펀드와 주식을 팔 수 있는 허가를 받아, 퍼스트 투자자회사 (First Investors Corporation)에서 월 스트리트 주식중개인으로 5년 간 일을 하면서 돈의 흐름과 논리를 철저하게 몸에 익힌다.

튤립 부케, 2016~2019

마케팅한 능한 예술가

제프 쿤스는 미술관과 월 스트리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 그 자체가 원자재로서 하나의 우량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예술가들이 꺼리는 예술품의 원가를 공개하고, 여기에 자신의 명성과 브랜드 파워를 활용하여 가치를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항상 그의 작품은 재료비와 공정비 이상의 가치를 평가받으며 최고가를 경신해 왔다.
쿤스가 자신의 작품을 투자 상품으로 만드는 데 활용한 방법은 바로 ‘인맥’이다. 먼저 대중스타들과 경제계 거물들에게만 작품을 판매했는데, 유명인이 작품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돌자 쿤스의 브랜드 파워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럴수록 그의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져 작품가격도 함께 올랐다. 이러한 순환고리는 식을 줄 모르고 이어졌고 나중에는 전 세계 미술계의 큰 손들이 뒤따라 작품 구매에 나서며 지금의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늘 진지하고 고독해 보였던 대다수 예술가들의 이미지와는 달리 제프 쿤스는 스스로를 브랜딩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런 그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는 사람들을 향해 ‘예술가는 훌륭한 흥정가가 되어야 한다’며 떳떳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비즈니스맨으로 분류되는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풍선 개, 1994~2000

마이클 잭슨과 버블스, 1988

앉아 있는 발레리나, 2017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주제와 방식으로 작업하고
때로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왔던 제프 쿤스.
이것은 예술가의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닐 것이다.
현실에 타협한 것을 넘어
이철저하게 이를 이용했던
제프 쿤스에게
‘비즈니스야말로 최고의 아트다’
라고 말한 앤디 워홀의 말이
오버랩된다.

예술가의 새로운 역할과
성공방식에 답하다

강아지, 1992

제프 쿤스는 현재 뉴욕 소호지역에 자신의 예술공장을 설립하여 무려 150여 명의 직원들을 고용하여 작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예술공장’이 의미하듯 매 공정을 정밀하게 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한 그는 이제 더 이상 직접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각 공정에 맞는 전문가들을 포진시켜 자신이 원하는 매끄럽고 반짝이는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대중들은 쿤스의 작품에 열렬히 환호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방법이나 작품이 갖는 깊이를 놓고 평론가나 경쟁자들은 독설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그는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나의 작품은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올바르거나 틀린 해석도, 숨겨진 의미도 없다. 모두에게 기쁨을 주고 사랑받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뉴욕 록펠러센터 앞에 7만여 송이의 꽃으로 만든 ‘퍼피(Puppy, 2000)’는 강아지 모양의 조형물로 도심 한가운데서 유혹적인 장미향을 흩날리며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추수감사절 무렵 메이시백화점에서 은빛 명절 분위기를 한껏 돋운 ‘래빗(Rabbit, 2007)’은 시각적 유희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난해한 상징성만이 예술이라 정의한다면 매번 최고가를 경신하는 그의 작품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보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주제와 방식으로 작업하고 때로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왔던 제프 쿤스. 이것은 예술가의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닐 것이다. 현실에 타협한 것을 넘어 철저하게 이를 이용했던 제프 쿤스에게 ‘비즈니스야말로 최고의 아트다’라고 말한 앤디 워홀의 말이 오버랩된다.

발행인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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