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쓸 때 가장 먼저 부딪치는 장벽은 바로 ‘내 안의 부끄러움’이다. 누구나 내 이야기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자칫 타인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날까봐 조심스럽다. 부끄러움이라는 장벽만 뛰어넘고 나면 나머지는 테크닉이다. 학습과 훈련에 따라 판가름난다.
우선, 에세이의 글감은 주로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경험에 기반한 에피소드이므로 상상력이 필요없는 장르라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에세이에서 상상이란 ‘새롭게 보기’와 동의어다.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낯설게 다가오거나 성찰의 지점이 드러난다.
둘째, 형용사와 부사로 치장한 군더더기가 문제다.
에세이는 글로 감정을 쏟아내는 배설구가 아니라 감정을 여과시켜 품격을 지니는 문학장르이다. ‘빨갛게 타오른 노을이 진다’는 표현보다는 ‘노을이 진다’가 담백하다. 작가가 부언하지 않아도 노을은 빨갛게 타오를 것이고 그 느낌을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주어야 한다.
셋째, 글맛은 수사보다 묘사가 살린다.
모든 수사를 버리고 주어와 동사만 남은 앙상한 글을 쓰라는 것은 아니다. 글맛을 살리려면 진부한 사실보다 상세한 묘사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집안은 조용하다’라는 사실보다는 “똑똑, 집 안은 수도꼭지에서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라고 써보는 것이다. 현대문학의 초석을 놓은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코브가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 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주라”고 한 것도 묘사의 힘을 강조한 말이다.
마지막으로,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에세이라는 말을 처음 쓴 몽테뉴도 <수상록>을 20년에 걸쳐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어색한 문장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식과 비유가 많아 화려해진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 주제와 거리가 먼 문장일수록 버리기 아까울 때가 많지만 냉정해지지 않으면 군더더기만 쌓인다. 다듬을수록 문장은 짧고 담백해진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삶 속에서 순간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옮기고 세상과 연결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시도’이다. 몽테뉴의 ‘Essais’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소중한 일상의 경험을 더 이상 시간과 함께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면 마침내 에세이를 쓸 준비가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