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59 SUMMER 2021

#Meet Me Ritual

내 안의 부끄러움까지 나만의 에세이
만들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 중 일부지만 이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장르는 에세이다.
지극히 사적인 글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담백하고 가식 없이 내 이야기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독자와 공명했을 때 비로소 끄적임은 ‘에세이’라는 문학장르에 편입된다.
이슬비(에세이스트, 작가)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

글의 소재는 나이며 나를 정직하게 묘사하고, 자신을 냉철하게 관찰하며 깨달은 점을 기록한 글을 우리는 에세이라 부른다. 에세이의 효시라 불리는 몽테뉴의 <수상록(Essais)>도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쓴 책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몽테뉴는 “나 자신이 이 책의 주제다. 남들은 앞을 보려고 하지만 나는 나를 들여다본다”라고 말했다. <수상록>의 원제 ‘Essais’는 실험, 시도를 뜻하는 단어인데, 그는 가볍지도 과하지도 않는 문체로 세상의 다양한 주제를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풀어내는 실험을 함으로써 ‘에세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창조했다.
몽테뉴 같은 사람의 이야기니까 먹히지 장삼이사에 불과한 ‘나의 이야기’가 글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종류의 글이라면 몰라도 에세이는 그렇다. 글이 좀 투박하더라도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기에 공감을 얻고 힐링을 줄 수 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실제로 전문작가가 아닌 개인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뒤죽박죽 엉키기도 하고 타인의 기억과 섞이면서 왜곡되기 일쑤다. 글로 쓰는 것은 머릿속에 잘못 입력된 정보를 바로잡고 기억을 선명하게 되살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부딪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내 일상에는 쓸 얘기가 없다’는 생각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 도대체 글감이 될 만한 것이 어디 있느냐 싶다.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의 작가 이하루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출근길에 겪었던 이야기, 상사에게 기획안 까인 일 등 직장인이면 겪는 일상다반사가 모두 훌륭한 글감이었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같은 경험을 해도 생각은 천차만별이라 누구도 똑같은 글을 쓸 수는 없다.

에세이는 처음이라
용기가 필요하다면

에세이를 쓸 때 가장 먼저 부딪치는 장벽은 바로 ‘내 안의 부끄러움’이다. 누구나 내 이야기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자칫 타인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날까봐 조심스럽다. 부끄러움이라는 장벽만 뛰어넘고 나면 나머지는 테크닉이다. 학습과 훈련에 따라 판가름난다.
우선, 에세이의 글감은 주로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경험에 기반한 에피소드이므로 상상력이 필요없는 장르라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에세이에서 상상이란 ‘새롭게 보기’와 동의어다.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낯설게 다가오거나 성찰의 지점이 드러난다.
둘째, 형용사와 부사로 치장한 군더더기가 문제다.
에세이는 글로 감정을 쏟아내는 배설구가 아니라 감정을 여과시켜 품격을 지니는 문학장르이다. ‘빨갛게 타오른 노을이 진다’는 표현보다는 ‘노을이 진다’가 담백하다. 작가가 부언하지 않아도 노을은 빨갛게 타오를 것이고 그 느낌을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주어야 한다.
셋째, 글맛은 수사보다 묘사가 살린다.
모든 수사를 버리고 주어와 동사만 남은 앙상한 글을 쓰라는 것은 아니다. 글맛을 살리려면 진부한 사실보다 상세한 묘사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집안은 조용하다’라는 사실보다는 “똑똑, 집 안은 수도꼭지에서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라고 써보는 것이다. 현대문학의 초석을 놓은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코브가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 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주라”고 한 것도 묘사의 힘을 강조한 말이다.
마지막으로,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에세이라는 말을 처음 쓴 몽테뉴도 <수상록>을 20년에 걸쳐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어색한 문장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식과 비유가 많아 화려해진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 주제와 거리가 먼 문장일수록 버리기 아까울 때가 많지만 냉정해지지 않으면 군더더기만 쌓인다. 다듬을수록 문장은 짧고 담백해진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삶 속에서 순간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옮기고 세상과 연결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시도’이다. 몽테뉴의 ‘Essais’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소중한 일상의 경험을 더 이상 시간과 함께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면 마침내 에세이를 쓸 준비가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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