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 윌리엄 행콕이 1000년이나 전해져 온 전통 제본 방식을 바꾸는 접착식 제본을 발명하기 전까지 실을 묶고 꿰매는 성가신 작업은 오랫동안 책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형태였다. 이와 함께 책의 체제를 갖추고 장식하는 장정 또한 발전하여, 책은 1500년 넘게 이어져 온 묵 직하고 매혹적인 공예품과 같았다.
우리의 전통 제본 방식은 실로 꿰매는 ‘선장(線裝)’으로 풀로만 붙였던 책이 잘 떨어지자 ‘침안’이라 불리는 바늘구멍을 뚫어 실이나 끈으로 책등을 묶는 형태다. 고려 중기에 이미 등장한 이 방식은 다섯 개의 침안을 뚫는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이 주로 사용되었다. 중국은 침안이 4개인 제본방식을 사용해 침안의 개수만으로도 우리 책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20세기 이후에는 서구의 양장이 들어와 비로소 오늘과 같은 책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양장은 유럽에서 14세기 이후 행해진 장정 방법으로 가죽이나 직물, 두꺼운 종이 등으로 만든 단단한 표지에 면지를 이용해 내지를 붙여 꿰매어 묶은 책이다.
현대에 와서는 책과 예술을 합한 북 아트라는 독립된 장르가 등장하여 과거와 현대의 제책 방식을 아우른 제본을 선보이기도 한다. 병풍처럼 펼치는 아코디언 북, 책을 펼쳤을 때 페이지가 깃발처럼 한쪽 방향으로 누워 펼쳐지는 플래그 북, 낱장의 종이를 한 곳에 모아 고정시켜 펼치는 팬 북, 긴 종이를 말아서 한쪽 면만 사용이 가능한 두루마리 북, 그림들이 입체적으로 튀어 오르는 팝업 북 등 손으로 책을 펼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통 제본은 일일이 손으로 엮는 지난한 과정들로 품이 많이 든다. 그러나 오래되어 낡은 책을 다시 새 것처럼 고치거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책을 만드는 특별함을 알게 해준다. 특히 한지가 주는 한국적인 미감과 만드는 이의 감각에 따라 제본 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문양은 책을 시대의 지혜를 담은 빛나는 오브제로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