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59 SUMMER 2021

#안목의 고취

생각을 엮는 기쁨,
전통 제본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종이가 없던 옛날에는 대나무에 글자를 써서 끈으로 엮어 책을 만들었다.
공자(孔子)가 책을 하도 많이 읽어 엮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동양 장정의 역사는 이렇게 중국에 기원을 두는데,
후한시대 이후 종이책이 등장하면서 제책 방식 또한 급속도로 발전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 숱한 지혜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다양한 생각을 단단히 엮어낸 책이 존재한 까닭이다.
오인숙(칼럼니스트)
사진 지희승 스튜디오

사물에서 종이까지,
인류의 기록을 엮다

기억과 기록은 엄연히 다르다. 기록이야 말로 역사의 시작이다. 인류가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책의 탄생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물론 이때의 기록은 부호 형태였고 이 부호들이 변형과 발전을 거듭하며 문자가 된다. 문자를 발명한 고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료에 문자를 새겨 기록을 남겼다. 어떤 고대인들은 나무에, 거북이 등껍질에 심지어 동굴벽에도 그들 삶의 흔적들을 남겼다. 그런 그들도 좀 더 체계적인 방식의 필요성을 느꼈고 여러 형태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마침내 책이 만들어졌다.
인류사의 첫 번째 책은 대나무에 글을 써서 묶은 ‘죽간목독(竹簡木牘)’이다. 대나무를 불에 쬐어 가공하여 글씨를 써서 엮은 책으로 한자의 ‘책(冊)’이란 글자가 바로 이 나무 조각들이 묶여 있는 모양에서 본떠 만들어졌다.
종이와 인쇄술이 등장한 이후 지금의 책 형태가 완성됐다. 그러나 그 당시 종이는 무척 비싼 재료로 관이나 부유층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지식이 특정 계층에만 향유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종이값 때문이다. 그러나 순결하고 우아한 양피지에 비해 거칠고 보잘것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종이를 중세 유럽의 수도사들은 노골적으로 폄훼했으며,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종이에 쓴 정부 문서는 모두 무효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산업혁명이 아니었다면 유럽에서 종이는 대중화되기 어려웠고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대나무를 엮은 책을 무겁게 들고 다닐지 모른다.

한국적인 미감의
오침안정법

1837년 윌리엄 행콕이 1000년이나 전해져 온 전통 제본 방식을 바꾸는 접착식 제본을 발명하기 전까지 실을 묶고 꿰매는 성가신 작업은 오랫동안 책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형태였다. 이와 함께 책의 체제를 갖추고 장식하는 장정 또한 발전하여, 책은 1500년 넘게 이어져 온 묵 직하고 매혹적인 공예품과 같았다.
우리의 전통 제본 방식은 실로 꿰매는 ‘선장(線裝)’으로 풀로만 붙였던 책이 잘 떨어지자 ‘침안’이라 불리는 바늘구멍을 뚫어 실이나 끈으로 책등을 묶는 형태다. 고려 중기에 이미 등장한 이 방식은 다섯 개의 침안을 뚫는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이 주로 사용되었다. 중국은 침안이 4개인 제본방식을 사용해 침안의 개수만으로도 우리 책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20세기 이후에는 서구의 양장이 들어와 비로소 오늘과 같은 책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양장은 유럽에서 14세기 이후 행해진 장정 방법으로 가죽이나 직물, 두꺼운 종이 등으로 만든 단단한 표지에 면지를 이용해 내지를 붙여 꿰매어 묶은 책이다.
현대에 와서는 책과 예술을 합한 북 아트라는 독립된 장르가 등장하여 과거와 현대의 제책 방식을 아우른 제본을 선보이기도 한다. 병풍처럼 펼치는 아코디언 북, 책을 펼쳤을 때 페이지가 깃발처럼 한쪽 방향으로 누워 펼쳐지는 플래그 북, 낱장의 종이를 한 곳에 모아 고정시켜 펼치는 팬 북, 긴 종이를 말아서 한쪽 면만 사용이 가능한 두루마리 북, 그림들이 입체적으로 튀어 오르는 팝업 북 등 손으로 책을 펼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통 제본은 일일이 손으로 엮는 지난한 과정들로 품이 많이 든다. 그러나 오래되어 낡은 책을 다시 새 것처럼 고치거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책을 만드는 특별함을 알게 해준다. 특히 한지가 주는 한국적인 미감과 만드는 이의 감각에 따라 제본 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문양은 책을 시대의 지혜를 담은 빛나는 오브제로 완성한다.
오침안정법 DIY KIT
동양의 전통 제본 방식인 선장제본 중 하나인 오침안정법을 이용해 직접 옛 책을 만들 수 있는 키트이다. 우리나라 전통 한지를 사용하여 고서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자유롭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구성 : 속지용 한지 12장, 비단 표지 2장, 제첨(제목종이), 가제본용 한지 2장, 바늘, 붉은 실
구입 : www.hanjilife-shop.com

발행인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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