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59 SUMMER 2021

#Taste Docu

서브컬처의 상징, 맥주

 

와인과 달리 맥주는 지식이 없어도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어느 여름 밤 한강에서의 치맥, 아버지와의 편맥, 방구석에서의 혼맥까지.
싸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술이었다. 물론 이때 우리가 마신 대부분의 맥주는 라거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전 세계 맥주시장의 80%가 라거이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어떤 맥주를 집었는데 브랜드명 말고는 별 다른 설명이 없다면 그건 라거란 뜻이다.
이렇게 쉽고 단순했던 맥주시장이 2000년대 이후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크래프트 비어를 들고나오면서
다소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맥주도 이젠 좀 알고 마셔야 폼이 나는 시대가 되었다.
서상우(칼럼니스트)

에일은 발효 시간이 짧아 위쪽에 효모가 둥둥 떠있어
색이 탁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침전물도 생긴다.
과일, 꽃 등 세상의 온갖 풍미가 이 안에 담긴 것 같지만
맛은 씁쓸하다.
라거는 에일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더 긴 시간 발효한다.
자연히 효모가 바닥에 가라앉아 색은 맑고 투명하며 청량한 맛이 난다.

에일이냐 라거냐
그것이 문제로다

맥주는 크게 ‘에일(Ale)’과 ‘라거(Lager)’로 나뉜다. 우리에게 무척이나 익숙해 매우 오랜 역사를 가졌을 것 같은 라거는 15세기 출신이다. 즉, 이전의 맥주는 오로지 ‘에일’뿐이었다는 이야기다.
라거는 그 맛이 청량하고 가벼운 반면, 에일은 꽃이나 과일 같은 달콤한 향이 나지만 맛은 쓰고 강하며 매우 묵직한 것이 특징이다. 진한 에일만 마시던 옛날 사람들에게 투명하고 맑은 라거의 등장은 틀림없이 센세이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행은 다시 크래프트 비어의 시대로 에일찬양 일색이다. 분명한 것은 두 맥주 사이에 옳고 그름은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취향의 문제일 뿐.
에일은 발효 시간이 짧아 위쪽에 효모가 둥둥 떠있어 색이 탁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침전물도 생긴다. 그래서 쉽게 상한다. 과일, 꽃 등 세상의 온갖 풍미가 이 안에 담긴 것 같지만 맛은 씁쓸하다. 반면 라거는 에일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더 긴 시간 발효한다. 19세기 이전에는 냉장시설이 없어 맥주의 본고장 독일의 양조업자들은 알프스 산맥의 깊은 동굴에서 라거를 발효했다고 한다. 장시간 발효하니 당연히 효모가 바닥에 가라앉아 색은 맑고 투명하며 청량한 맛이 난다. 그러나 맥주 애호가라 칭하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맥주는 대부분 에일에 속한다.

라거냐 에일이냐를 떠나
맥주에는 4가지
기본 재료가 있다.
바로 보리, 홉, 효모, 물이다.
이중에서 맥주의 쓴맛을
완성하는 홉은
12세기 이후에야 맥주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맥주를 맥주답게 하는
요소들

에일과 같은 ‘상면발효맥주’이든 라거처럼 ‘하면발효맥주’든 간에 모든 맥주에는 4가지 기본 재료가 있다. 바로 보리, 홉, 효모, 물이다.
뭐니뭐니 해도 기본은 영어로 ‘몰트(Malt)’라 불리는 보리이다. 이 몰트는 우리가 아는 보리와는 좀 다르다. 보리에 싹을 틔워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뜨거운 바람으로 건조시키는 과정을 더하기 때문이다. 홉은 초록색 솔방울처럼 생긴 열매로 맥주의 쓴맛을 담당한다. 그리고 맥주가 상하지 않게 하는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한다. 12세기 이전의 맥주에는 홉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양한 허브를 조합한 ‘구르트’란 것을 넣었는데, 독점으로 가격이 매우 높았다. 게다가 많은 허브를 조합해서 만들기 때문에 환각이나 독성이 있는 재료를 넣어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러다 12세기에 들어서 독일인 수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이 맥주에 처음으로 홉을 넣기 시작하면서 구르트에서 홉으로 맥주의 역사가 뒤바뀐다. 마지막으로 맥주의 톡 쏘는 맛과 다양한 향을 전담하는 효모를 빼놓을 수 없다. 발효를 담당하는 ‘균’인 이 효모가 없다면 맥주는 그냥 맹맹한 쓴 물과 다름없다.

맥주 하면
부산 아이가

2012년 한국 맥주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다니엘 튜더(Daniel Tudor)의 칼럼을 기억한다.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는 한국 맥주’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당시 주류업계는 물론 대동강맥주를 먹어 본 적이 없는 대다수 한국 국민에게 놀라움과 함께 그동안 한국 맥주에 불만을 품었던 많은 사람들의 동조를 이끌어냈다. 대동강맥주는 180년 역사를 가진 영국 맥주회사 어셔스 양조장이 2000년 문을 닫자 북한이 약 174억 원을 들여 생산설비를 가져와 독일에 기술 자문을 얻어 2002년부터 생산한 브랜드이다. 이런 까닭에 영국인이었던 다니얼 튜더의 입맛에 더 맞았는지 모른다.
이에 반박이라도 하듯 이 즈음부터 국내에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부산의 ‘갈매기 브루잉 컴퍼니’가 대표적이다. 2013년 6월 캐나다 국적의 스테판 마이클 터코트가 오픈한 이곳은 2년 만에 경남권 크래프트 맥주업계를 장악할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스테판은 미국 씨서론 프로그램이 인정한 ‘인증 씨서론(Certified Cicerone)’이다. ‘맥주 소믈리에’로 불리는 이 자격증은 크래프트 맥주를 능숙하게 서빙하고 관리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국내에서 스테판을 포함해 단 2명뿐이다. 스테판은 부산 갈매기 브루잉 양조장에서 매달 5~8가지 크래프트 맥주를 만든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한정판 맥주를 한두 종씩 더 내놓기도 하는데 이때 전국의 크래프트 맥주 애호가들이 부산으로 몰린다. 만일 갈매기 브루잉의 크래프트 맥주를 먼저 맛봤다면 다니엘 튜더의 컬럼 제목도 분명 바뀌었을 것이다.
확실히 지금은 크래프트 맥주 전성시대이다. 개인 브랜드는 물론 편의점에서 내놓은 레트로 스타일의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한다. 곰표 밀맥주, 쥬시후레쉬 맥주, 백양 BYC 비엔나 라거 등 과연 맥주와 상관이 있을까 싶은 브랜드들이 예상을 벗어나는 재미를 주고 있다. 한번 맛을 들인 맥주애호가들은 다음엔 어떤 이름의 맥주가 나올지 예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맥주 브랜드의 수만큼 오랫만에 수제맥주 시장도 활기가 돈다.

발행인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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